연재] 冷 炎 vol.1 - 5




슬슬 복귀준비.. 글 쓰고 싶어 근질근질..





누질르면 볼 수 있어예
冷 炎





< vol.0 >



# 1


빌어먹을 친구 녀석이 전화를 받지않는다. 마이는 애꿎은 핸들만 거칠게 내리쳤다. 손바닥이 얼얼하
게 달아오른다. 그러나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또다시 휴대전화의 통화버튼을 누르고, 나츠키가 전화를
받아주길 기다린다. 제발 제발, 마이의 간절한 음성이 잘근잘근 씹히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다.
그러는 사이 목적지가 다 와감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비췄다. 목적지, 시즈루가 있는 곳, 시즈루가
꽁꽁 숨어버린 곳, 시즈루가 생을 마감하려는 곳,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한 해안가다.

마이는 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부재중 음성에 나직하게 한숨을 뱉었다. 이제는 포기한 듯, 귀에 꽂은
이어폰도 빼버린다. 그러면서도 불길한 기운을 감추지 못한다. 시간이 촉박하다는걸 자꾸 인지시키면
서 난폭히 차를 몰았다. 앞서 오는 차와 충돌하려는 것을 간신히 피한다. 떨리는 심장을 움켜쥔다.








# 2


저벅저벅, 나츠키는 걸었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그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웃고는
있지만, 아프게 보였다. 탁, 마지막 발걸음을 정리하고 어느 문 앞에서 멈춰선다. 찬기가 저녁노을과
함께 복도 끝 유리창에서 밀려 들어온다. 나츠키는 고개를 들어 창가 저편의 붉은 노을을 바라봤다.
시즈루, 곧 갈게. 네 곁으로…. 목소리를 삼키며 말한다.

나츠키는 자켓 안쪽에 손을 넣어 차갑고 딱딱한 물건을 쥐었다. 조용히 눈을 감아 신호흡을 한다. 떨
리지도, 아프지도 않은 무의미한 감정으로 문을 열었다. 손에 쥔 낯선 감촉이 익숙치않아 아주 조금은
걱정스럽다.








# 3


석양 노을이 수면 위로 부서진다. 푸르기만 한 바다에 붉은빛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반짝반짝, 보석
을 흩뿌려놓은 듯한 바닷물이, 찰랑찰랑, 시즈루에게 손짓을 한다. 거센 파도의 소리가 시즈루를 조심
스럽게 부르고 있다.
시즈루는 손바닥으로 안고 있던 목걸이를 촤르륵, 하고 펼쳐보인다. 금색 옷이 햇살에 반짝이어 눈이
부셨다. 조그맣게 달려있는 팬던트에는 영문 S와 N이 마주하여 겹쳐져 있었다. 붉은 눈동자 안 팬던트
의 형체가 희미해진다. 시즈루는 또 다시 눈물과 마주한다.

나츠키는 차가운 바다가 태양을 삼켜버리는 저녁 노을을 좋아했어요. 꼭 우리 같다고…. 이해할 수 없
었지만, 오늘은 알 것도 같아요. 시즈루가 손끝에서 목걸이를 툭, 떨어뜨렸다. 반짝, 그것은 한참을,
아주 한참을 반짝이는 빛을 내다가 깊은 바다에 삼켜진다. 시즈루는 희미하게 웃음을 짓다가, 눈을 감
았다. 그 눈가 끝에서 흘러내린 눈물도 바다에 삼켜진다.


- 후지노씨! 안돼요!!


시즈루의 마지막 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리. 몸이 굳어진다. 동공이 활짝 벌어진다. 시즈루는 재빠르
게 고개를 돌려 소리를 추적했다. 어떻게 당신이, 라는 표정이 안면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 4


늦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발, 제발…. 쿠가, 제발 부탁이니까 아무 짓도 하지 말아줘. 나오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억누르며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그 뒤로 레이토의 묵직한 발소리도 더했다. 두 사
람의 표정에서 긴박함이 느껴진다. 이윽고 눈 앞에 나츠키가 있을 그곳이 비춰졌다. 고급스러운 문의
가운데에는 곧은 서체로 쓰인, <쿠가 히토시> 의원이라는 명판이 눈에 띄었다.

나오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격해진 숨을 고를 여유도 없이 손잡이를 돌려보지
만, 굳건히 잠겨진 문은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켜보던 레이토가 남자임을 과시하듯 쾅, 쾅,
몇 번의 발길질로 닫혀있던 문을 부서뜨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 어떻게 이럴수가…. 레이토도, 나오도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졌다. 도저히 믿기
지 않는다는 듯, 나오는 두 세 차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일깨운다. 그러나 변한것은 없었다. 잘못
본 것이라고, 그렇게 바라던 장면은 오히려 더욱더 선명하고 차게 다가와,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만
든다.


- 죽는 길이 외롭진 않겠군. 이렇게 구경꾼이 늘어날 줄이야.


철컥, 나츠키가 들고있는 총에서 나는 소리였다. 탄환이 장착되어 언제라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나츠키를 제외한 이 방에 모인 나머지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차가운 공포를 느낀다. 나오는 금방이라
도 울어버릴 것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고 나츠키에게 한 발짝 다가가 나츠키를 말리려고 하였다.


- 다가오면 네 녀석 심장부터 구멍 내주겠다. 유우키.


하지만, 칠흑보다 더 어두운 나츠키의 목소리에 그만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 5


- 후지노씨! 그러면 안돼요! 제발 부탁이니까 이쪽으로 와요.

- 당신이 어떻게 여길..

-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제발.. 제발.. 부탁이예요. 다시 생각해봐요. 죽는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 제가 살아있어도 해결되는 건 없는걸요.

- 나츠키를 생각해요! 당신때문에 아파하는 그 녀석, 나츠키..

- 이미 끝난 일이예요. 나츠키와 저, 그리고.. 그 사람과 저 역시.

- 아니예요! 나츠키는 아직도.. 아직도, 당신 사랑해요. 알잖아요!

- 어쩔 수 없어요. 나츠키에게는 저보다 소중한 가족들이 있어요. 토키하씨, 저를 대신해 나츠키를..

- 아, 안돼요!!! 후지노씨!!! 안돼!!

- 잘.. 부탁해요.




이건 아니야, 이런 건 아니잖아! 마이는 미친 듯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손끝에서 스치는 시즈루
를 제대로 낚아채지 못했다.
넘실거리는 푸른 물과, 성난 하얀 파도가 시즈루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기세다. 어째서인지 그 순간
조차 시즈루는 웃고 있었다. 그래서 화가났다. 목 끝까지 차올랐던 슬픔이 터져나와 시즈루를 불렀다.
그리고 시즈루는 그에 답이라도 하듯, 나츠키를 닮은 푸른 바닷물 사이로 사라졌다.



안돼요. 당신이 죽어버리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아파요. 당신은 살아야 해요. 어떻게 해서든
당신은 살아야해…. 마이는 눈을 질끈 감는다. 하얗게 변해버린 바다속으로 몸을 날렸다.


네 부탁을 단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었어.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행복하길 바래서. 네 아버지의 뒷
조사를 부탁할 때에도, 총을 구해달라는 너의 무리한 부탁에도…. 네가 아파하는 걸 뻔히 알았지만,
네가 더럽혀지는 것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어.
그런데.. 네 사랑은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아. 지켜주고 싶어. 나는 네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그것이 사랑이잖아.



하얀 파도가 차갑게(冷) 일었다.








# 6


- 가족이란 서로에게 고통을 주라고 있는 것이 아닌데, 어쩌다보니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고통만 느끼
게 해주더군요. 사에코, 제 어머니에게도 그런 뼈아픈 고통을 주시더니, 이제는 당신의 며느리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주셨어요.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수 있는 건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살
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당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 그랬던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답이라고는 그것뿐입니다. 어머니도, 시즈루도.. 당신하고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이니까. 그래서 말이죠..


나츠키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도 태연하게, 자신의 아버지에게 겨누던 총구를
자신의 머리로 옮겨 갖다댔다. 나츠키의 그런 행동에 묵묵부답을 하던 아버지도, 두 사람을 지켜보던
레이토도, 안절부절하던 나오도, 기겁하며 '안돼'를 연달아 외쳤다.


- 나츠키! 그러지 말거라! 레이토야! 뭐하고 있느냐! 네 동생 좀 말려보거라! 나츠키야, 이 애비가 잘
못했다. 그러니 제발 총은 내려놓거라. 아니, 차라리 이 애비를 죽이거라. 모든 잘못은.. 애비가 지고
가마. 그러니 총은...

- 쿠,쿠가. 그러면 안돼!! 야!! 너 이러면 안돼! 내가 미안해.. 내가. 내가... 내가 잘못했어. 내가
시즈루하고 네 사이를 갈라 놓았잖아. 내가 사과할게. 그러니까, 그러지마. 내가 이렇게 빌테니까, 그
만해. 제발!!!!


아버지와 나오의 말을 싸그리 무시하며 나츠키는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방아쇠를 끌어 당겼다.
방금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손가락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다.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것이 온몸에
전해져왔다.


- 제가 죽으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끼실테죠. 당신 앞에서, 이렇게 보란듯이 죽는다면, 아버지는
아파할까요.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시면서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시즈루, 곧 네가 있는 곁으로 갈게. 약속했잖아. 행복하지 못한 삶이라도 우리는 함께일 것이라고….


아주 잠깐 정적이 느껴진다. 곧이어 이어지는 총성 소리. 탕, 꽤나 묵직한 소리와 함께, 스르륵, 하
고 두 사람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일순간 벌어진 일이었기에, 머뭇거리던 나츠키의 아버지와 레이토가
자리에 경직되어 버린다.


- 이... 바보..야. 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



불꽃(炎)처럼 뜨거운 꽃이 피어 올랐다.





冷 炎

Written by. 카제



















< vol.1 >



유자차가 담긴 머그잔을 침대 옆 유리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머리를 말아올렸던 집게핀을 빼
내어, 길다란 머리를 풀어 헤쳤다. 말려진 갈색 머리칼을 손끝으로 정돈한다. 그러자 달콤한 향기가
코끝에 솔솔, 와닿는다.


- 빨리….


나는 여전히 엎드린 채로, 어린애처럼 시즈루를 재촉했다.
시즈루가 빙그레,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어른같은 웃음을 짓는다. 어쩐지 기분나쁜데? 고작 해봐
야 한 살 차이인데 말이지…. 시즈루는 무척이나 어른스럽다. 부드러운 미소도, 흐느적거리는 손의 움
직임도, 교태스러운 말투도,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마저도 어른스럽다. 나는, 그런 어른스러운 시즈루
를 좋아한다.
시즈루가 어른스러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다. 그저 내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시
즈루가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 듣고있으면,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구나, 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가끔은 아이같은 시즈루도 보고싶다. '애늙은이'라고 놀림받던 내가, 시즈루에게 어
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시즈루도 나에게 그랬으면 싶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 이 시간이면 함께 있는다. 방금 막 시즈루는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시즈루는 언제나 관
계를 끝내고 샤워를 한다. 그건 버릇이라고 했다. 몸에 남아있는 찝찝한 정액을 씻어내기 위한, 그래
서 관계가 끝나자마자 샤워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사정을 하면서 내뱉는 분출물이 나에
게는 없다는 뜻이다. 나는 여자니까. 그래도 시즈루는 항상 여운도 느끼기 전에 샤워실로 사라져버린다.


- 이렇게 누워있으면 잠오는데…. 제가 안을래요.

- 아? 으응.


샤워 후, 차가워진 시즈루 몸을 안아줬는데, 시즈루가 잠이 온다며 내 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자
세를 바꾸어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시즈루 가슴에 코를 부빗거리며 체취를 찾아 해맨다.


- 오늘은 뭐하면서 지냈어요? 감기 걸린 건 괜찮아요?

- 시즈루가 다 가져갔잖아. 내 감기…. 회사에서는 별일 없었어.

- 후응. 그래요. 그럼, 그 일은? 아직도 그 검사 친구가 도와주지 않겠다고 해요?

- 응. 그래서 골치다. 그 녀석 은근히 막힌 구석이 있어서, 원칙에서 벗어난 일은 하려고 하지않아.


마이에게 부탁하려 했던 일을 묻는다. 마이는 대학교에서 만난 학교 동문이다. 나는 산업디자인을 전
공하였고, 마이는 법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얼추 취미가 비슷하여, 가입만 해두고 자주 가지도 않았던
밴드 동아리에서 만났다.
마이는 철저한 검사스타일의 원칙주의자였다. 그래서 우리 회사와 아버지 관계에 대한 뒷조사를 부탁
했을 때에도 매몰차게 거절했다. 뭐,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기에 충격은 덜했다. 그래도 친구라고 하나
있는것이 도와주면 안되나, 싶어서 살짝 화가 나기도 하였다.


- 아버지가 그렇게도 미워요? 꼭 벌을 줘야할 만큼?

- 당연하다! 전에도 말했지 않았는가? 그 사람이 나를 낳아준 생모를 죽게 했다고….

- 아아, 알고있어요. 그래도 생각을 해보자면, 그 분은 나츠키를 낳아주신 아버지잖아요?

- 됐어.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싫어. 아니, 입에 담기조차도 싫다. 그런 사람은 인간도 아니다.


울컥, 나를 낳아준 엄마 사에코의 죽음이 떠올랐다. 초라한 병원 침대에서 싸늘하게 식어간 사람….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시즈루 품을 더욱더 파고들었다.


-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해할 수는 있을 것도 같은데, 가족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그저 나츠키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밖에….
그리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은 있잖아요? 나츠키 아버지, 그러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그래요. 제가 만났던 국회의원 역시도 다를 것은 없었어요. 그렇다고 나츠키 아버지
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거…. 나츠키도 잘 알잖아요.

- 응….


빈말이라도 맞장구를 쳐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주 조금은 시즈루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 저는 오히려 미워할 아버지라도 있는 나츠키가 부러워요.


아…. 나도모르게 탄성이 새어나왔다.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시즈루 기분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고개를 들어 시즈루를 바라봤다. 혹시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을까, 몹시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시
즈루는 여느 때와도 다름없는 부드럽고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봐준다.










- 하아암…. 일 나가야 할 시간이네요.


시즈루가 쳐다보는 시계를 나도 쳐다봤다. 무늬가 없는 하얀 벽에 동그란 테두리가 선명한 벽시계다.
내 품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나와 시즈루는 옷장으로 나른나른, 걸어간다. 나는 여전히 이불 속에서
밍기적거리며, 시즈루의 뒷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곧게 뻗은 다리 선이 굉장히 매끄럽다.

시즈루는 옷장 서랍에서 속옷을 꺼내고, 옷걸이에 걸린 청바지와, 개어진 티셔츠 중에서 분홍색으로
프린트 된 라운드 티를 꺼낸다. 그것들을 하나씩 입으며, 계속해서 나를 힐끔거린다.


- 나츠키, 안 가요?

- 고민 중이다.

- 응? 무슨 고민? 저 이제 일 가야해요.

- 할 말이 있어.


나는 몸을 반쯤 일으켜 시즈루와 눈을 마주했다.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버린 등이 싸늘했다. 이불을
최대한 끌어안고 등을 휘감는다. 낑낑, 그러는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시즈루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
렸다. 내가 그러는 동안에 시즈루는 옷을 전부 입었다. 이제 코트만 걸치면 나갈 채비는 끝낸 것이다.


사실 어젯밤부터 고민을 해왔다. 밤새 잠을 설쳐가며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하
면서, 말을 할까 말까를 계속해서 갈등하고 있다.

시즈루와 알고 지낸지 이제 겨우 열흘 남짓. 그런데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깨닫게 되었다. 신기하기만 한 일…. 나는 딱히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이 없다. 지금
시즈루말고 만나는 아이가 있긴 하지만, 그 아이에게서는 특별한 느낌을 얻지 못했다.
시즈루와 나는,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게 만나고, 몸을 탐하고, 가지려 하지만,
뭐라고 단정 지을 만한 특수한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보니, 내가 시즈루를 좋아하고 있었
구나, 알 수가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입술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시즈루. 장난스레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화를
낼 것처럼 붉은 눈동자를 빛낸다. 나는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생각들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시즈루
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 나츠키? 급한 일이 아니면 다음에 이야기할래요? 늦겠어요. 그리고 저 먼저 나갈 테니까, 나갈 때
문단속 잘해주세요.


답답했는지, 시즈루가 난처하게 웃으며 현관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벽에 걸려진 시계를 바라보고 미간
을 살짝 좁혔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나는 시즈루가 현관 신발장에 기대어 부츠를 신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그리고 그녀가 들릴 수 있도록 소리쳤다.


- 나랑 사귈래?


분주했던 시즈루의 행동이 단번에 멈춰진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나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시즈루 등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괜히 말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시즈루가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짐작가지 않는 표정이다. 시즈루도 당황하
는 표정을 짓기도 하는구나. 처음봤다. 시즈루의 그런 표정….















< vol.2 >



나는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겹겹 쌓여지는 그 느낌이 불쾌할 뿐더러, 어딘지 모르게 누군
가를 닮아있는 나를 대면하고 있을 자신이 없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인식을 각인 시켜주었던
사람은 새어머니였다.

친족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아버지가 재혼을 하시고 처음으로 외가에서 갖는 행사였던 만큼 굉장
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새어머니는 아침부터 분주히 나를 데려다놓고 이
런저런 옷을 입혀보고, 머리 모양도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나에게 신경을 잔뜩 써주셨다.
그 당시 나는 이제 갓 중등부를 졸업한 십대의 한창 나이였다. 화장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새어머니
는 드레스처럼 치렁한 옷과, 이리저리 말아 올린 머리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장품 케이스를 들
고와서 내게 화장을 해주었다.

처음으로 하는 화장은 굉장히 낯설었다. 이질적인 느낌에 잔뜩 움츠려 있던 기억도 난다. 거울에 비춘
모습…. 다른 사람을 불러 일으키는 착각에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못했었다.
새어머니는 아주 예쁘다며, 수수하게 한 메이크업이 너무 잘 어울린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주셨
다. 그래서 조금은 용기를 내어볼까 했는데, 새어머니께서 방문을 나서며 조용히 혼잣말하던 말귀에
그럴수가 없었다. '나츠키는 화장하니까 영락없는 사에코씨 닮았네.' 그 순간의 새어머니 표정은 너무
나 쓸쓸해 보였다.


나는 화장대 앞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로 흐느적흐느적 걸어갔다. 시즈루가 벌려놓고 간 화장품들을
구경하다가 우울해진 기분을 티비나 보면서 달래려는 참이다. 이제 겨우 두 시간이 지났는데, 앞으로
도 다섯 시간을 뭘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쓰러지듯 침대에 드러누웠다.

'다녀와서 봐요.'

시즈루가 웃으며 남기고 간 말을 떠올렸다. 시즈루의 그 표정은 좋은건지, 싫은건지 전혀 감조차 잡히
지 않는 오묘한 표정이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많이 민망한 고백이었다. 그보다 멋진 말들이
많았는데, 하필 '나랑 사귈래?'라니….
시즈루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여자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쩌면….


- 나, 차인건가?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시즈루의 직업은 호스티스다. 술을 팔고, 웃음을 팔고, 때로는 몸도 팔 수 있어야 하는, 보통의 여자
라면 꺼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유명하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호스티스다.
시즈루를 지명하는 사람들도 왠만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들었다. 정치인, 연예인, 운동선수….
시즈루에게 직업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조금 충격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녀가 그런 곳에서 일을 한다
는 것이 목에 가시처럼 껄끄럽다.



시즈루와 나는 아주 단시간에 가까워졌다. 서로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볼 시간도 없었다.
나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향을 찾았다. 부드러운 체취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편으로는 불안스
럽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시즈루와 처음 마주했을 때에도 부드러운 시즈루의 향기에 푹 빠졌었다.

농염한 키스, 강한 향수냄새, 하얀 살결과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창으로 새어 들어오던 강한 햇빛.
처음 만나던 날, 처음으로 시즈루라는 여자를 알게된 날에 기억되는 것들이다. 그날은 술에 취하여 세
세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름이 제대로 끊겨있어서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정도였다.

숙취에 견디기 힘들어 깨어보니, 낯선 방이었고, 낯선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었다. 창밖에서 강렬한 빛
이 비추어 그녀가 마치 천사같았다. 까만 슬립을 아슬하게 걸친 야릇한 천사…. 그 전날에 술을 마시고
어딘가에서 쓰러졌던 것까지는 얼핏 기억이 났고, 끊어진 기억을 이어보려고 나름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내게 입술을 맞춰오는 것이다. 가벼운 뽀뽀가 아니라 진짜 키스를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화끈거리는 게, 나는 갑작스럽게 키스를 해오는 시즈루를 밀어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키스를 받아주었고, 아주 오랜 연인처럼 시즈루를 품에 안았었다.



버릇처럼 시계를 바라보다가 허기짐을 느꼈다. 평소라면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도 남을 밤 11시.
시즈루가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배가 꼬르륵하고 신호를 보낸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주인없는 무례함을 잊고 주방 곳곳을 뒤졌다.


- 스파게티…. 먹어도 되겠지?


겨우 찾아낸 것은 시판으로 나온 인스턴트 스파게티였다. 확실히 혼자 살아서 밥은 챙겨먹지 않나보다.
밥통도 깨끗하게 비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반찬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뭘 먹고 사는거야? 라
고 생각하며 싱크대 선반을 뒤지는 순간, 눈에 들어왔던 것이 겨우 인스턴트 음식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걸 요리해 본 기억이 없다. 설명서를 읽어보는데 명확한 조리법도 없었
다. 면을 삶는지, 볶는지 따위의 방법만 나와있고, 소스는 언제 어떤것부터 첨가하라는 설명이 없다.
나는 일단 물을 적당히 부은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아무런 망설
임없이 녀석의 단축버튼을 꾹 누른다.



유우키 나오. 녀석은 몇 년 전부터 가볍게 만나는 엔조이 상대다. 유일하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만나
고 있다. 나는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 대학교 시절에 절실하게 사랑하던 친구가 하나 있었지만, 그 아
이와 깨지고 난 후로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귀어 본 경험이 없다. 그 후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는
그냥 가볍게 일회성 상대를 만나는 것뿐이다.


< 바보냐? 그런 것쯤은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지. 아아! 아까워! 쿠가, 너 때문에 아이템 흘렸잖아!>


게임 중이었는지, 전화를 받는 녀석이 버럭버럭 화를 낸다.


- 아아아.. 귀 아파! 소리 지르지마라. 야, 면은 그냥 물에 넣는거 맞지? 그럼 소스는 어떡하냐?


나는 핸드폰을 어깨로 받쳐 귀 가까이 붙여대고 있어서, 녀석이 지른 소리에 고막이 나가는 줄 알았다.
나오가 일러주는 대로 이것저것 하려고 하니 한 손으로는 모자랐던 것이다. 나오는 신경질을 내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하나 세세하게 가르쳐주었다.


< 프라이팬에 기름 좀 두르고 소스랑 면이랑 같이 넣어서 볶으면 돼. 면 삶을때 오래 하지마. 그렇게
하고 있냐? 조용하네. 쿠가~ >


- 어? 어어. 듣고있다.


그런데 그때, 갑작스럽게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기름에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내려 버렸다.
으악, 나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미처 피하지 못한 오른손 손등에 기름이 튀어올라 따끔
거렸다. 눈물도 찔끔 맺힌다.
면을 건지려다가, 달궈진 프라이팬 안으로 면을 삶았던 물이 왕창 쏟아진 것이다. 아직도 프라이팬 위
는 타닥타닥,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리브유와 물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죽는 줄 알았다. 차라리 굶을 걸 그랬나보다. 나는 멍청하게 서서 엉망이 되어버린 가스레인지 주변을
바라봤다. 저 많은 기름이 얼굴에라도 튀었으면…. 아, 끔찍하다.










내가 술에 취했던 날, 시즈루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를 집까지 데려오는데 죽을 뻔하였다고 했다.
무거운 것은 둘째치고, 내가 중심도 못잡고 몸을 가누지 못해서 겨우겨우 데려왔다고 하였다.
집으로 데려오고 침대에 눕히려는데, 내가 깨어나서는 그녀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한다. 사실 나에게는
그 밤의 기억이 없다. 처음부터 쓰러질 때까지 마시자 생각하고, 죽어라 마셨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
다. 흐려진 촛점으로 흐릿한 윤곽만 보이는 답답한 심정이랄까…. 기억이 없기 때문에 시즈루가 하는
말이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고있다.

내가 무척이나 아파 보였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슬픈 얼굴이었다고…. 그래서 그렇게 엉겨
오는 나를 떼어놓지 못하고 안고 있었는데, 내가 시즈루에게 무작정 키스를 했다. 그것은 그 당시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기억이 난다. 분명 내가 시즈루에게 요구했음을 알고있다.

왜 밀어내지 않았느냐고 언젠가 물었었다. 모르는 여자가, 그것도 술에 취한 낯선 여자가 키스를 해오
는데, 어째서 받아주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 눈물을 그치게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츠키는 눈물을 그쳤어요.


그런데 나는 왜 그녀에게 키스를 한 것일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에는 술기운 때문에 라고 믿
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 넌 내가 좋은가? 왜 매일매일 찾아오는 날 거부하지 않는거지?


이틀전에 시즈루에게 물었던 것이다.
시즈루는 그 물음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흐릿한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아파 본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아니까요.



나는 또다시 시계를 바라본다. 하얀 벽이 익숙한듯 걸려진 동그란 시계. 시즈루가 오려면 아직도 기다
린 만큼을 기다려야 한다. 슬슬 졸음도 밀려온다. 자기는 싫지만, 자고 일어나면 어쩐지 시즈루가 옆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vol.3 >



다녀왔어요, 뒤엉킨 발음으로 나츠키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혹시 돌아간 것
일까, 생각을 하니, 심장 주변 어딘가가 아프게 반응을 한다. 나는 역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을 억누르며
비틀비틀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평소와는 공기가 다르다 라는 것을 인식한다.
자연스럽게 침대에 눈길을 두었다. 그곳에는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나츠키가 조용하게 잠이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쥐고있던 심장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려 놓았다.

옷을 갈아입으며 주위를 빙 둘러본다. 어둠이 살포시 감싸안은 방안 곳곳에, 나 아닌 누군가의 흔적이
눈에 밟힌다. 그러다가 주방을 바라봤다. 평소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는 싱크대와 식탁 테이블 위는
온갖 식기구로 어질러져 있는 것이다. 엉망이 된 주방의 상태에 괜히 웃음이 났다.


- 가끔은 어린애 같다니까요.


나는 나츠키가 있는 침대로 걸어가며, 조용하게 혼잣말했다.

나츠키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아이같은 얼굴을 하고선 잠을 잔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쌕쌕
숨소리를 낸다. 나는 침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나츠키 얼굴을 바라봤다. 꼭 감은 두 눈가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쩐지 처음 만났던 그날이 생각난다. 그날의 나츠키는 눈가가 마를새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오늘만큼 추운 날씨였다. 아니, 이보다 추웠으면 추웠지, 덜 춥지는 않았을 최악의 날씨였다.
항상 나를 지명해주는 VIP 고객이 그날따라 유독 추태를 부려서, 일찌감치 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대
기중인 차를 태워서 보내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사람이 가게 모퉁이에서 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른체하고 그냥 지나칠까 했었다. 모르는 사람과 뒤엉켜서 좋을 일 없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올해 들어서 제일 추운 날이었다. 혹시나 그대로 뒀다가 얼어서 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츠키는 무척이나 얇은 옷차림으로 웅크려 자고 있었다. 이런 한겨울에 얼어 죽기라도 작정한 사람처
럼, 얇은 셔츠와 자켓이 전부인 옷차림이었다. 외소한 몸. 긴 생머리. 그리고 백지장처럼 하얀 피부….
그러나 제일 이끌렸던 것은, 어딘지 모르게 너무나 아파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지나치지 못했었다.


사람을 오랫동안 상대하다 보면, 그 사람이 아픔 정도는 어느정도 감지할 수 있어진다. 자세하게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까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있다.
나츠키는 무엇엔가 상처를 받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대략 5~6년 전의 내 모습
과도 흡사해 보였으니까…. 나츠키 위로 겹쳐지는 내 모습은 돌아서려는 내 발길을 붙잡았다.

특히, 섹스를 할 때에는 그 아픔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아픔의 정도에 따라 느껴지는 감도가 다르다.
안을 때, 키스할 때, 소리낼 때, 그리고 작은 손길에서 조차도 상대의 아픔이 전달되어 온다.
나츠키의 경우는 심했다. 나츠키는 섹스를 하는 내내 울었다. 아픔을 견딜 수가 없으니, 잡아달라는 듯
나를 만지고, 끌어안는 모든 손길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나는 나츠키가 아픔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품
안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규칙적인 숨소리에 맞춰, 얼굴을 살짝 덮고있던 길다란 흑발이 하늘하늘 춤을 춘다. 나는 조심스레 나
츠키의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었다. 나츠키의 얼굴색은 굉장히 하얗다. 머리색에 대비되서 그런지, 더욱
하얗고 깨끗해 보인다. 쪽, 소리가 나도록 짖궂게 볼에 입을 맞춘다. 이렇게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도
세상 모르게 잠을 자는 나츠키에게 심술이 났다.

그런데 나츠키는 아무런 미동이 없다. 살짝 인상을 쓰면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금세 평온하게 숙면에
빠지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 나츠키는 심술쟁이다. 매번 나를 짖궂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장난치듯 약간은 거칠게 나츠키의 입술 사이를 열어 보였다. 처음에는 꼼짝도 하지 않던 나츠키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내 혀끝에 반응을 하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케잌이 입안에서 사르륵 녹는것처럼, 나츠키의 입술은 부드럽다. 입술을 헤집고 혀끝으로 맛
보는 뜨거움은 떨림을 두배로 돋구어준다. 짖궂어. 나를 짖궂게 만드는 나츠키가 더 나쁜거야….


- 뭐야…. 언제 왔어?


반쯤 눈을 감고서 나츠키가 묻는다. 나름 화가 났다는 듯한 싸늘한 말투가 나를 웃게 만들었다.


- 사귀자고 하길래, 뭔가 이벤트라도 준비했나 기대했는데, 집안 꼴만 엉망이네요?

- 이벤트……. 어린애같긴. 졸려…. 이리와. 안고 잘래.

- 응석쟁이.


나츠키가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나는 그 힘에 못이기는 척 넘어가면서, 나츠키의 온기가 가득한 이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나를 품속으로 끌어안은 나츠키는 어린애처럼 늘어진 하품을 한다.


곁에 있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아픔까지도 되살아나, 나츠키만큼 나 역시도 괴로울
것 같았다. 그렇게 동정에서 시작한 감정이었다. 알고있으니까. 힘들고, 아픈 순간에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그 고통을 너무 잘 알았기에 나츠키를 밀어내지 못했다.


- 나츠키. 잠 들었어요?


품에 안겨있어서 나츠키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 으응….


희미하게 신음하듯 내뱉는 음성. 정말로 피곤했던 것인지, 나츠키는 그 사이에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없이 달콤하다가도, 어느 순간 변심하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독이 되어버린다.
내 인생에 찾아왔던 단 한 번의 사랑이 그랬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아직도 내 어딘가에 남아있어서,
이따금 쓰라린 고통을 안겨준다.
다시는 사랑을 않겠다고, 두번 다시 사랑따위에 내 인생을 바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도 벌써 수년이 흘러간다. 그러나, 흘러간 세월만큼 다짐도 무뎌진 것일까.


뻔히 보이는 아픔을 내 손으로 붙잡고 있다. 이 아이를 사랑하면 아픔도 슬픔도 많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다시 누군가를 진심으로, 가슴으로 품어 안는다.















< vol.4 >


우리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근처 공원이나, 한적한 도심의 한가운데를 무작정 걷는다. 가끔은 우발적
으로 서로에게 선물을 사주기도 한다. 좌판에서 파는 아기자기한 액세서리, 귀여운 인형 등을 항상 커
플로 골라서 나눠갖는다.
언젠가는 기념으로 맞춘 커플 스웨터를 입고 나간 기억이 있다. 나츠키는 부끄러워 온종일 툴툴거렸다.
사람들은 같은 옷을 입고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나는 나츠키에게 과감한 스킨십을 한다. 그들이 보란듯이 말이다.


시선은 불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시선을 받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겁게 여겼던 어린 시
절도 있었다. 남자들의 역겨운 시선, 바보같은 시선은 나를 오만하게 만들어준다. 여자들의 부러움에
찬 열등 의식, 질투의 시선은 나를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시선들이 나츠키와 다니게 되면 다르게 느껴진다. 단지 손만 잡고 걸었을 뿐인데, 사랑스러운 눈
길로 서로를 쳐다볼 뿐인데….


- 두 사람은 그.. 사귀는 사이인가?


우리를 몰래몰래 살피던 장사꾼이 궁금했는지 뜬금없이 묻는다.
나츠키에게 장난스레 꽃을 사달라고 어리광을 부려 들어가게 된 꽃가게였다. 커플 스웨터와 장미꽃….


- 왜요? 저희가 커플로 보이세요?


나는 나츠키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잡고있던 손을 살짝 놓았다. 엉켜있던 손가락이 맥없이 풀린다.
나츠키가 나를 있는껏 노려본다. 쳐다보지 않았지만 분명 그러고 있다.


- 티를 맞춰입은 자매인가 생각했는데, 분위기는 영락없는 커플로 보이네만….


안개꽃과 장미꽃이 어우러진 예쁜 꽃다발을 만들던 아저씨가 웃는다. 그리고 나츠키를 바라보더니 한
마디를 덧붙였다.


- 그런데 이쪽 아가씨 표정을 보니 아닌 것도 같구만.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니 흘겨 들으슈. 아가씨.


- 얼마입니까?


나츠키의 가라앉은 목소리. 꽃가게 아저씨에게 돈을 건네고, 꽃다발을 나츠키가 받아 안았다. 꽃가게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다. 그런 시선이 너무 싫다. 소름이 끼쳤다.
동정이 한껏 담긴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어두운 사각지에 몰려있던 나를 더욱 깊은 곳으로 밀어넣는다.
누군가에게 동정을 받을만큼 아픈 사랑은 아닌데…. 몇 년만에 찾아온 내 사랑. 그런 사랑이 아니다.

고개를 떨구던 내 앞에 꽃다발이 턱하니 안겨온다. 그리고 나츠키는 꽃가게 아저씨가 들으라는 식으로
나에게 말했다.


- 시즈루, 여기 꽃은 좀 시들시들한 것이 예쁘지 못하다. 다음에는 이 장미보다 더 예쁜 꽃 사줄게.


아저씨는 턱이 곧 빠질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나츠키는 그런 아저씨를 한 번 흘겨보며, 내 손을
바짝 잡아당긴다.
나츠키는 화가나면 주먹을 쥐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깊게 찌른다. 그리고 자주 상처가 난다. 나는 꽃다
발 너머로 보이는 나츠키의 행동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주말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나츠키와 보낸다. 그래봐야 낮시간 동안이지만, 반나절을 함께 보낼 수 있
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들이다.
나츠키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러시아워 시간에 출근을 하고, 차가 꽉꽉 막히는 시간에 퇴근을 하는
보통의 회사원. 반면에 나는 나츠키가 퇴근하는 시간 정도에 출근을 준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일에는 만나는 시간이 정말 짧다. 길어야 두 시간 정도랄까….


- 나츠키, 우리 그냥 같이 살까요?


햇살이 한창 좋은 토요일 오후다. 나츠키는 내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 TV를 보고있다.
나는 요리치인 나츠키에게 먹일 점심을 준비하다가, 동거에 대하여 나츠키에게 생각을 물었다.


- 같이 살자고?

- 네…. 나츠키는 싫어요?


탁탁탁. 양파를 다지는 소리가 방에 울린다. 나츠키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TV에 빠져서 내 질문은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무시해버릴 만큼 너무나 어이없는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곰곰히 생각중일까.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나는 도마 위에 칼을 내려놓고 뒤를 돌았다. 나츠키는 아무 생각 없다는 표정으로 TV 스포츠 중계에 빠
져 있는 것이다.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남들이 슬프다 하는 영화를 보고도 무덤덤하는 편이고, 감동을 받거나
아프다고 해서 울지 않는다. 그 옛날 사람에게 버려졌던 아픈 기억에도 눈물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자주 눈물을 짓는다. 나도 놀라버릴 정도로….


- 시즈루?! 너.. 눈에 누, 눈물이..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코끝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본다.


얼마전에도 이렇게 눈물이 터졌었다. 그리고 그때에도 나츠키는 내 곁에 있었다.
나츠키는 자상하다. 너무나 자상한 사람이다. 나츠키 본인은 모르지만, 나츠키는 누가 뭐라고해도 자상
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차갑고 툴툴거리는 모습 뒤에, 어떤 자상함으로 나를 놀
래켜줄까….

가끔은 실망시키는 모습도 보여주곤 한다. 아직은 사랑 표현, 감정 표현에 서툰 아이라서, 기대감이 컸
던 나에게 아주아주 가끔 아픔을 느끼게 해 준다. 지금처럼…. 기대하고 있는 나를 철저하게 배신하면,
나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눈물을 흘려버린다. 나는 사랑을 하면서 철없는 욕심쟁이가 되어버렸다.


- 시즈루? 괘, 괜찮은가? 양파때문에 눈이 매운거야? 응? 말 좀 해라. 답답하잖아.


- ................ 그런가봐요.


나츠키의 가늘고 부드러운 두 손이 내 눈가를 훔친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나츠키를 눈에 담는다. 나츠키
는 불안한 듯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나는 웃어버렸다.

나츠키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곁에 두고 싶다는 욕심을 느낀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나 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불쾌한 시선도, 내가 아닌 것 같은 낯설은 눈물도….
나는 어쩌면, 이 아이에게서 치료를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아픔을 동정한다는 것은
내 진심을 숨기기 위한 수단일 뿐,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건, 무미건조하게 변해버린 삶을 치유해 줄 사랑스러운 누군가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 vol.5 >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웨이트리스를 흘겨봤다.
엄청난 미스매치…. 실로 당황스러웠다. 마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시선을 창으로 견준다.
내 앞으로 형형색색의 파르페가 놓였다. 그리고 마이 앞쪽으로는 은은한 향을 풍기는 아메리카노 한 잔
이 얌전히 자리를 잡는다. 웨이트리스는 음료를 사뿐하게 내려놓고 꾸벅 인사를 한 후 돌아선다.

대략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나이인 굉장한 미소녀 스타일이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동그
랗고 커다란 눈, 오똑한 코와 앙증맞은 입술이 자연스레 목소리를 연상케한다. 귀여우면서 약간의 콧소
리가 섞인 애교스러운 목소리…. 그것은 너무나 자연적인 사고였다. '원숭이' 하면 바나나가 떠오르거
나, '바다' 하면 푸르다는 것을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 대략.. 10년 전의 나츠키를 보는 것 같았어.


웨이트리스가 우리에게서 서서히 멀어지자, 마이가 소곤히 속삭였다. 얼핏 웃는 소리도 들렸다.


- 뭐어? 말이 되는 소릴해. 10년 전이면 너랑 나는 서로 알지도 못했다.

- 그래서 대략이라고 했잖아. 8년이나 10년이나…. 흠…. 아무튼, 아까 그 아이 말이야. 푸훕…!

- 아, 알아. 안다고. 그러니까 말 하지 않아도….


마이가 나에게 하고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미 짐작을 해버렸다.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마이
를 위협해 보지만, 별 효용이 없었다. 마이는 키득키득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낸다.


- 신입생 환영회때 동아리 선배들이 기겁했잖아. 생긴 건 연예인 뺨치게 예쁘게 생겨서, 메인 보컬로
세우면 좋겠다느니 뭐니 엄청 좋아했는데, 목소리에서 홀랑 깼다고…. 푸하하하!! 생각하니까 또 웃겨.
신고식으로 불렀던 노래가 she's gone이었지? 예쁘장한 얼굴에 걸쭉한 목소리는 최고였다고.

- 으, 으윽….


나는 마이의 시선을 피해 애꿎은 파르페만 휘휘 저었다.
그 오랜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는 녀석이 어째 얄미웠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던 기억 중 하나다.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만취한 상태로….



사람들은 실상을 겪어보기도 전에 편견을 가진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럴 것이다. 혹은,
사랑은 꼭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한다는 것이라든지. 동성끼리 사랑은 불결하다, 등의….
나는 방금 그런 편견적인 시각으로 웨이트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얼굴을 가진 사람은 전부 귀엽
고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가질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다.

마이의 어깨 건너로 보이는 웨이트리스는 무척이나 지루한듯 하품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나는
그녀의 음성을 되내인다.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


- 취향 많이 변했네? 달달한 건 별로 안 좋아했잖아? 파르페 무지 달텐데.


멍하니 웨이트리스 목소리를 생각할 때, 마이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다.


- 그랬나? 글쎄…. 그 녀석이 파르페를 좋아해서 익숙해 졌나보군.

- 시즈루씨?


툭하고 던져지는, 마이의 입에서 나온 시즈루의 이름은 어쩐지 굉장히 생소하다.
나는 조용하게 '응' 이라고 대답을 한 뒤, 생크림이 얹어진 딸기 한 조각을 스푼으로 떠먹었다. 입안에
퍼지는 생크림의 미끈함은 아직도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그럭저럭 먹어줄 만했다.


- 정말 사랑하는 거야? 잠깐의 호기심이라면 지금이라도 관뒀으면 좋겠어. 그런 쪽에서 일하는 여자들
은 단순 호기심으로 만나는 것일수도 있다고. 그렇게 된다면, 넌 상처받을 거야.

- 시즈루는 그런 여자 아니다. 괜한 걱정이야.


마이는 나에 대한 걱정이 가끔 지나칠 때가 있다. 특히 여자를 만난다고 하면 더욱 그래 보였다.
아마도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사귀었던 여자 아이 때문인 듯 하다. 그 아이와 헤어지고, 나는 무척이나
힘들어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인데, 그때에는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모르겠다.
마이는 그랬던 나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지금처럼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아직 시즈루를 마이에게 소개해 주지 않았다. 시즈루는 마이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한다. 나에게 유일
무이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이는 시즈루 이야기만 나
오면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호스티스라는 직업이 내키지 않는단다. 그것은 나도 동감한다.


- 그러면 그 아이는 어쩔꺼야? 정리했어?


그 아이? 뭔 소리야…. 나는 손끝에 묻은 생크림을 티슈에 닦아내면서, 마이를 바라봤다.
그 아이를 가리키는 상대가 누구인지, 곧바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이가 '붉은 머리'라고 일컬
어 주기에, 그 아이가 나오를 칭하는 것임을 인지한다.


- 어차피 처음 만날 때부터 그냥 엔조이였어. 정리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이지.

- 아아, 너는 단순해서 참 좋다. 인간 관계도 어쩜 이렇게 단순하게 싹둑 정리할 수가 있는지, 부럽네.

- 놀리는 거냐?

- 나츠키~! 제발 사람 좀 가려가면서 사귀어. 옆에서 보는 내가 다 불안하잖아.


잔소리 또 시작되었다. 잔소리나 들으려고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나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한다. 마이의 업무에 관한 이야기나, 마이가 새로 산 자동차의 승차감에 대한 이야기….
시즈루를 알고 난 이후, 늘어난 것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는 처세술이라고 생각한다.










시즈루 오피스텔로 향하는 길은 항상 조심스럽다. 오늘은 마이의 잔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오피스텔
입구를 들어서는데 평소보다 부쩍 긴장이 된다. 일부러 차도 멀찌감치 세워두고 공원 길을 이용해 빙
돌아왔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으나, 어쩐지 오늘따라 불안했기 때문이다.

내 차는 다른 차들에 비해 시선을 많이 받는 편이다. 국내에서 몇 대 없는 종류의 스포츠카이기도 하
지만, 색감 자체가 흔치않은 파란색이라 눈에 쉽게 뛴다. 이탈리아에서 연수를 받던 시절에 우연히 기
회가 되어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연수생 주제에 이런 기회를 얻은 것도 황송할 따름인데
최초로 출시되는 차를 선물을 받게 되었다.
파가니 존다F라는 모델로, 내가 디자인에 참여했던 모델이다. 그리고 년간 생산 대수가 30대도 안되는
세상에서 제일 빠르고 최고가를 자랑하는 모델이다.



- 요란해…. 이 차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지 않아요?


시즈루와 처음으로 드라이브 하던 날에, 시즈루가 했던 질문이다.


- 응. 대부분은 신기하게 쳐다보긴 하더군. 뭐, 시즈루도 곧 익숙해 질거야.


그날의 시즈루는 정말 아름다웠다. 지그시 차창 너머를 응시하는 옆 모습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또렷이
남을 정도였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달했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나는 멍하니 시즈루에 대한 행복한 감상에 젖
어있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 어? 쿠가?


우려했던 일이 결국에는 생겨버렸다. 바보같이 긴장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 아, 나오….


내 앞에는 나오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다. 나는 심각하게 당황해 버렸다.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호흡곤란 증세까지 찾아오기 전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했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말
이 없었다. 그래서 더 경직되어 버린다.

여기는 시즈루가 사는 오피스텔이다. 또한 나오가 사는 오피스텔이기도 하다. 세상 참 좁다 한다. 두
사람이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나는 너무나 당황을 하며, 그 말을 실감했다.
어떻게 한 층을 사이에 두고, 몸을 섞었던 여자가 둘씩이나 살고 있을 수가 있을까. 언젠가 이렇게 마
주칠 날이 오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왜 하필 오늘인지….

나오의 강한 시선이 너무도 따갑게 느껴진다.


































원문은 나츠시즈 최강홈피 냉염에 있습니다.
http://natshiz.net

by 카제 | 2008/07/02 01:09 | └▶ 나츠시즈ss | 트랙백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zkwp.egloos.com/tb/183345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유리알 at 2008/07/02 23:34
엄훠`~~ 드디어 펜을 다시 잡으셨군요 !!!
옆에 소설방도 다시 열려서 느므 좋아욤~~~
오늘 다시 한번 '나란히 걷기'를 읽었네요. 벌써 10번은 읽어본 듯하네요.
근데 읽고 또 읽어도 좋아용ㅎㅎ
연재 冷 炎 은 새드엔딩이라는 것을 알고 읽으니 정말 미취겠어요 ㅠㅠ
우울한 건 싫은데 손가락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클릭하고 있 ;;;;;;;;;;
Commented by 시어링 at 2008/07/03 11:55
펜대잡아서 추카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다고 이번에 이렇게 몰아서 올리면 보는 내내 죽겠음 ㅎㅎㅎㅎㅎ
Commented by 카제 at 2008/07/04 10:05
유리알님/ 아핫^^; 말만 복귀했을 뿐이지.. 아직 한줄도 못썼답니다 ㅠㅠㅋ
챙퓌한 글.. 열번이나 읽어주셨다니..ㅠㅠ 가,감사.. 생유베리~

어링군/ 펜대는 아직 안잡았땅께..ㅋㅋ
Commented by 로리컬번개 at 2008/07/04 14:44
뒷편은 얼로갔어 :@:@
흑흑 겜하지말고 컴뷁 ㅇ<-< ㅇ<-<
Commented by 지나가는 나그네 at 2009/08/27 14:37
카제님의 미결사건( ? )들이 어서빨리 마무리 되었으묜 하는 마음 뿐임당...
그런 마음에 자주 들락날락 하지만...

OTL.... 오늘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시고.. 흑...
돌아와 주세욤 카제뉨~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